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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봉평신라비’가 밝혀준 신라 법제도의 단서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서 있는 봉평신라비(鳳坪新羅碑, 국보 제242호)는 1988년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비석입니다. 높이 약 2m 남짓한 이 비석에는 400여 자의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라 초기의 법과 행정 운영 방법을 직접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발견 당시부터 학계의 큰 주목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라비란 무엇인가?

신라비(新羅碑)는 신라에서 세운 비석으로, 특정 사건을 기념하거나 법령·규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진 걸로 추측합니다. 현재까지 경주, 포항, 울진 등지에서 여러 신라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역사를 기록한 문헌 기록에서 미처 알 수 없는 신라 사회의 구체적 제도와 관습을 알려주는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봉평신라비의 내용

봉평신라비는 6세기 초, 법흥왕 대(재위 514~54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용에는 당시 신라의 재산 분쟁 해결, 범죄자 처벌, 관직자의 역할 등에 관한 다양한 규정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비문에 여러 관리와 지방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시 중앙 정부와 지방 세력 간의 관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신라가 법과 제도를 통해 지방까지 통치망을 확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평신라비

신라 법제도의 단서

봉평신라비가 중요한 이유는, 신라가 단순한 부족이 합쳐진 나라를 넘어 체계적인 법치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즉, 봉평신라비는 신라가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법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문화재적 가치

봉평신라비는 국보로 지정되어 현재 울진 봉평리 현장에서 보존하고 전시되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보호각과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직접 찾아가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일부 글자는 마모되어 판독이 어렵지만, 현재까지의 해석만으로도 신라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삼국유사와 맞먹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됩니다.

여행 팁 – 울진 역사 기행

봉평신라비는 울진을 찾는 역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울진에는 아름다운 해안 절경과 불영사, 성류굴 등 자연과 문화유산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추천할 만합니다.

신라 말기의 불교 전성기 흔적 양양 선림원지 승탑

맺음말

울진 봉평신라비는 단순한 비석이 아니라, 신라가 어떻게 법과 제도를 세우며 나라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작은 돌에 새겨진 글씨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법과 제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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