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은 송악산을 등지고 임진강과 예성강에 접한 천혜의 요충지였습니다. 북쪽은 산으로 방어가 가능했고, 남쪽은 강과 평야를 활용할 수 있어 정치적·군사적 안정성과 교역의 편의성을 동시에 갖춘 수도였습니다.
개경의 중심에는 왕이 거주하고 정치를 수행하는 궁궐 구역이 있었습니다. 고려의 정궁은 만월대(滿月臺)로, 왕실의 정치·의례 공간이었습니다. 현재 발굴된 만월대 터에서는 기단과 건물지, 기와편, 석재 장식품 등이 확인되어 당시 궁궐의 규모와 위엄을 보여줍니다.
개경은 동서로 크게 나뉜 두 개의 시장이 번성했습니다. 특히 개성 상인들은 고려 인삼과 직물을 국제 무역으로 연결하며 동아시아 경제의 핵심 주체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송나라와 아라비아 상인들도 개경을 방문해 활발한 교역을 했습니다.
개경의 도로는 궁궐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었으며, 성문과 연결되어 군사적 방어와 행정 통치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주요 도로 주변에는 귀족가와 관청이 배치되었고, 도성 외곽에는 불교 사찰과 민가가 분포했습니다.
고려는 불교 국가답게 개경 곳곳에 대규모 사찰이 세워졌습니다. 흥왕사, 현화사 등은 국가적 행사와 국제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사찰 주변은 교육·문화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남북 공동 발굴 조사와 문헌 연구를 통해 개경의 도시 구조가 조금씩 복원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복원 기술을 활용해 3D로 재현한 개경의 모습은 고려 왕조의 국제성과 세련된 도시 문화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