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는 백제 사비 시대(538~660)에 건립된 사찰로, 부여의 중심 사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중심에 세워진 5층석탑은 백제 불교의 성숙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사비 도성의 불교문화를 상징했습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전체 높이가 약 8.4m로, 위로 갈수록 균형감 있게 줄어드는 비례가 특징입니다. 기단은 단층으로 단순화되었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형식을 충실히 모방했습니다. 특히 각 층의 옥개석은 처마가 얇고 길게 뻗어 있어 안정감과 세련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정제된 미학은 ‘백제 석탑의 표준형’으로 불릴 만큼 대표성을 지닙니다.
탑신부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고구려 정벌 후 새긴 글귀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7세기 후반 탑이 고구려 멸망 이후 당군의 주둔지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며, 한국 고대사의 격동기를 증언하는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따라서 정림사지 5층석탑은 단순한 종교 건축을 넘어 역사적 사건을 전하는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환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석탑을 백제 후기 불교 건축과 미학,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문화 교류의 중요한 증거로 평가했습니다. 석탑은 백제 건축의 정제된 아름다움과 역사적 사건이 공존하는 드문 사례로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탑의 세부 조형미를 감상할 때는 층층이 줄어드는 비례와 처마 곡선의 섬세함을 주목하면 백제 장인들의 감각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